티스토리 뷰
조각보는 무엇인가
조각보란
'쪽보'라고도 불렸던 조각보는 옷을 짓고 남은 조각천을 이용했다.
예전에는 베가 흔하고 값싼 것이 아니었다.
손수 짜야만 가족의 의복을 장만할 수 있었던 우리네 어머니,할머니들은
한 필의 삼베,모시,명주 따위의 옷감이 되어 나오기까지 길고 긴 노동과
한없는 공을 들였다. 그러다 보니 조그만 천 한 조각이라도 버리는 것을
죄라고 여길 정도로 지엄한 것이었다.
그것은 농부가 쌀알 하나,밥알 하나 못버리는 이유와 같다.
멀쩡한 밥알을 하나라도 버리면 저승에 가서도 반드시 찾아서 오라고
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우리조상들은 사람 손이 간 것들에 마음을 담아 두었다.
천조각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이용했던 것도 이 마음에서 출발한다.
조각보를 '폐품에서 태어난 예술'이라고 가볍게 말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버려지는 것을 막연하게 기워서 써보겠다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소중해서 감히 버려서는 안 되었기에 작은 천조각 하나라도
생명으로서 존재가치를 부여해주는 방법으로 조각보를 만든 것이다.
그러했으니 쓰여지는 것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옛 조각보를 펴보면 반듯한 것도 있지만,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이 아닌
선이 조금씩 비뚤어진 것이 많다. 요즘으로 보면 파격미라고 할 수
있겠지만, 천이 귀하다보니 번듯한 것을 잘라 쓰지 않고 약간 비뚤어진
것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이런 조각보들의 어수룩한 모양새가 우릴
한없이 편안하게 해준다. 옛 조각보가 아름다운 것은 이처럼 자연발생적
인 데 있다. 현대 조각보가 옛 조각보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이유는
인위적이기 때문이다.
버려질 운명인 가지각색의 보잘것없는 조각을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통합할 줄 알았던 옛 여인들의 능숙한 솜씨는 조각보를
예술적 평가의 대상으로 올려놓았던 것이다.
조각보를 만드는 데는 별다른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아이들이 바느질을 배울 때 제일 처음 접하게 되는 것이
조각보였다. 어머니는 실과 바늘을 잡는 법을 알려주고 난 뒤
자투리 천을 맡긴다. 그러면 천과 천을 평면으로 제일 먼저 잇기 위해
복판에 시침질을 해야 했고, 비교적 쉬운 홈질에서 시작해서 또 접어서
하는 감칠질을, 마무리 부분에 가서 공글리기나 상침을 해서 한 개의
조각보가 완성된다. 따라서 이 조각보 안에는 모든 바느질 기법과
솜씨가 그대로 들어 있는 셈이다.
조각보를 통해 처음 바느질을 배울 때는 어설펐지만 시집갈 무렵이면
바느질 솜씨가 멋스러운 단계로 숙련되었음을 볼 수 있고, 또한
배색도 생각해서 조각보가 창작품으로 넘어가는 과정도 보여준다.
실 한 뼘도 귀했던 시절엔 여식에게 조각보를 만들하고 실을 줄 때도
실꾸리를 감아놓고 꼭 필요한 정도만 끊어서 주었다.
어느 정도
바느질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기웠던 실을 한 올 한 올 풀어내어
다시 쓰게 했다. "조각보를 만들어서 할머니에게 검사를 맡는데,
잘되었으면 더 곱게 하라고 하지만 바늘땀이 신통찮을 때는
'어휴, 이 딸아야. 뭐 바느질 했는게 개이빨 꼬라지만큼도 못하노.
이렇게 해가지고는 어딜 가도 물두멍(물동이를 이고 나르는 일)밖에
못 친다. 물두멍이나 칠라카면 이렇게 해라' 하며 혼줄을 내셨대요."
장순분씨는 어릴 적 어머니에게서 들은 예기를 회상했다.
어머니가 미숙한 아이를 길러 어른이 되게 하듯, 조각보는 천과 실을
아끼는 과정에서 아무것도 허투루 버릴 것이 없음을 상기시키고,
또한 공을 들이면 하잘것없는 것도 가치있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정성을 다한 물건만이 제 몫을 한다는 정신을 함께 배운 것이다.
손끝의 기교만으로는 절대 감동을 주지 못한다. 예전에는 딸을 낳으면
그때부터 시작해서 아이가 시집갈 때 쓸 조각보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십오륙세가 되면 혼수로 쌓인다.
무엇을 싸두거나 나르는 도구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조각보가 쓰일 곳은
많았다. 옛 기록을 보면 반가(班家) 에서 혼수를 해갈 때 한 집에서
줄잡아 150개, 더 큰 집에서는 500개까지 되었다고 한다.
귀한 것일수록 두번 세번 겹겹으로 싸야 했으므로 많이 필요했다.
서민이라고 해도 적어도 이불과 옷가지, 음식 따위를 싸기 위해선 작게는
10개에서 4,50개 정도는 필요하게 된다. 색동보,항라보,청색홍색보,
사주단자보 등등 시집 보내는 딸의 혼수가 되기도 하고 친지들에게
전하는 귀한 선물로도 이용되는 조각보는 복을 비는 마음을 대신했다.
밥상보가 식복을 싸두는 도구이기도 했듯이 말이다.
옛 조각보 중에는 사용하지 않은 것도 많은데,
만든 이의 정성과 공을 귀하게 여겨 감히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각을 덧대어 쓰는 일은 주로 서민들이 해왔다. 수십 조각 이어서
원판은 하나도 없어지고 목만 남아 있는 버선 종류나 스님들의 납의도
조각보의 패션이다. 조각을 큼직큼직하게 이어놓은 것은 떡보자기와
같은 용도로 사용한 것이고(이음새가 많으면 떡이 달라붙는다),
자잘한 조각들은 소품들을 싸거나 장식용으로 매듭을 달아서 썼다.
개화기가 되어 공장 직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천이 흔해져 조각보는
차차 사라지게 되었다.
조각보에 담긴 애환을 살펴보면 참 재미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장사하는 사람들, 특히 속칭 '보따리 장사'하는
사람들이 쓰고 있는 조각보이다. 이들은 장사를 처음 시작할 때
사용한 보자기는 절대 버리지 않는다. 물품의 양이 많아지면
천을 다시 달아내고, 구멍이 나면 덧대서 깁고, 빨지도 않는다.
이처럼 장사하는 이들이 보자기를 소중히 여겼던 것은,
이 보자기가 재물을 불려준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니와, 한편으로는
보자기에 대한 의리이기도 했다. 상인들은 "내가 이것으로 시작해
번 돈으로 식솔들을 먹여 살렸고, 한 세월을 같이 살아왔으니 너와 나는
사람처럼 중한 인연이다"라는 생각으로 해지고 닳더라도 절대로
버리지 않고 조각을 덧대어서 쓴 것이다.
우리가 조각보를 이야기할 때 미적으로 아름다운 부분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물론 그런 조각보들도 있었다. 그러나 조형미만을 추구하다보면
조각보의 정신을 잊게 된다. 그런 조각보들은 정신과 목적을 빼버리고
껍데기만 모방하여 재생한 까닭에 옛 조각보와 같은 맛이 나지 않는 것
이다.
'조각보정신'을 살리려면 무심으로 돌아가서 조각보를 만든 의미를
생각하고, 그 내면의 가치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쓰는 조각보에서 보다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각보는 전통적인 미의식과 현대적인 조형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그 시대에 선호되는 색상에 따라, 만드는 사람의 개성과 감각에 따라서
다양한 컬러 배합이 가능하다. 그래서 수백 수천의 죄다 다르게 나올 수
있는 것도 조각보가 가진 매력이다.
장식품이나 일상용품으로도 조각보는 훌륭한 아이템이다. 멀쩡한 베를
잘라 조각보를 만들기보다는 자투리 천을 이용하면 된다.
삼베,마,모시 등 천조각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작게 만들면 다포(다기세트를 덮는 보)나 상보로, 크게 만들면
햇볕을 걸러서 받아들이는 가리개로 쓸 수 있다.
또한 쿠션,덮개 그리고 조각보를 응용한
옷과 핸드백 같은 소품 등 다양한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
쓸모없는 아주 작은 조각천들이 모여 아주 쓸모있고 아름다운 귀한 보석이 되는것이다
- Total
- Today
- Yesterday
- 천연염색
- 창작오페라
- 오페라
- 서울대병원
- 베르디
- 한남동
- 시칠리
- 장수동
- 사진전
- 일본여행
- 비제
- 소설
- 뇌경색
- 돈호세
- 대림미술관
- 베르나르 베르베르
- 세익스피어
- 지중해
- 푸치니
- 트라파니
- 한국오페라
- DDP
- 오방색
- 리골레토
- 조각보
- 장누리
- 모짜르트
- 자연장
- 오르페오
- 오텔로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